1. 강아지는 가까운 곳에 눕습니다. 아마도 믿으니까 그런 거겠죠.
강아지들은 늘 가까운 곳에 눕습니다. 머리맡, 발치, 때로는 옆구리 쪽에 등을 대고 누워 있었습니다. 처음 데려왔을 땐 마루에 혼자 있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방 안으로, 이불 위로, 그리고 어느새 베개까지 탐내기 시작했습니다. 믿음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보호자를 중심으로 자리를 정하고, 위험이 있을까 늘 주변을 살피는 습성이 있어서 그렇다고도 합니다. 저희 집 강아지 둘도 그렇습니다. 특히 작은 아이는 제가 이불을 덮기 전엔 절대 자리를 잡지 않았습니다. 제가 눕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머리맡에 털썩 기대앉았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그 자리가 이 아이의 지정석이 됐습니다. 따뜻하고 안전하다고 느끼는 자리니까 그렇습니다. 강아지는 마음이 가는 곳을 몸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가까이서 자겠다는 건, 그 사람이 가장 편안하다는 뜻이었습니다. 때로는 제 배 위에 올라 누워서 잠이 드는 날도 있었습니다. 처음엔 무거웠지만, 지금은 그 무게가 익숙합니다. 함께 숨 쉬는 소리가 들릴 만큼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건, 서로를 믿고 있다는 증거니까요. 아이 때문에 자리가 좁아도 이불을 편하게 덮을 수 없어도 아이 때문에 몸을 뒤척이기 힘들어도 많은 반려인들이 그렇듯 그것마저도 행복한 일상이기에 오늘도 등을 맞대고 잘 것입니다.
2. 고양이는 거리로 말합니다. 적당히 가까운 50 cm는 애정이고 20cm 신뢰입니다.
고양이는 처음부터 품에 안겨 자는 동물이 아닙니다. 처음엔 문턱 너머에서 자고, 그다음엔 침대 모서리, 어느새 한참 가까운 발치까지 다가옵니다. 저희 집 고양이 셋도 똑같았습니다. 맨 처음엔 아예 옆방에서 잤습니다. 그러다 하나가 발밑에서 자더니, 다른 둘도 따라왔습니다. 고양이는 의심이 많은 동물입니다. 잠을 자는 자리는 가장 취약한 순간이라 쉽게 내어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매일 밤,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 와서 조용히 누운다는 건 그만큼 믿는다는 뜻입니다. 하루 중 가장 무방비한 그 시간을 나와 공유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날은 제 허벅지를 베개 삼아 눕기도 했습니다. 살짝 무겁지만, 그 무게가 기분 좋았습니다. 고양이는 말 대신 거리로 이야기합니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그 거리만큼, 관계도 깊어졌습니다. 한 번은 한 아이가 제 가슴팍 위에 몸을 던지듯 올라와 잔 적이 있었습니다. 깜짝 놀랐지만, 그날 이후로 그 아이는 매일 밤 같은 자리로 왔습니다. 고양이는 습관의 동물이고, 습관은 곧 신뢰에서 비롯됩니다. 잠자리 위치는 그 아이 마음의 지도와도 같습니다. 중심에 내가 있다면, 우리는 꽤 괜찮은 관계입니다.
하지만 조금 힘든 건 강아지는 비켜달라고 하면 움직여 주는데 반해 고양이는 꿈쩍도 안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고양이가 오기 전 가장 편안한 자세를 잡고 고양이가 와서 잘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구석에서 이불도 덮지 못하고 잘 수도 있습니다.
3. 보호자의 잠자리 곁은 '가장 좋은 자리'입니다.
동물에게 잠자리는 그저 쉬는 곳이 아니라,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장소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어디서 자는지를 보면, 마음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제 강아지 둘과 고양이 셋은 결국 같은 공간, 제 방 안에서 모두 자게 됐습니다. 공간이 좁아도 다들 저를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강아지는 이불을 덮기 무섭게 제 다리에 등을 붙였고, 고양이는 이불 위, 옆, 혹은 베개 옆에서 각자의 자리를 만들어갔습니다. 이따금 싸우기도 했습니다. 자리싸움입니다. 누가 더 가까이 잘 수 있느냐, 누가 더 좋은 위치를 차지하느냐는 다툼이었습니다. 그런 걸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얘네에게 내가 가장 좋은 자리구나.’ 함께 자는 게 일상이 되고, 그 일상이 평화롭다는 건, 관계가 안정됐다는 증거입니다. 몸이 편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편하니까 그런 겁니다. 어떤 날은 제가 뒤척이면 강아지가 일어나 이불을 다시 덮어주듯 몸을 기대 왔고, 고양이는 조용히 침대 가장자리로 물러나기도 했습니다. 작은 배려들이 쌓인 잠자리에는 그동안 쌓인 사랑도 함께 누워 있었습니다. 몸을 좀 뒤척이기 힘들어도 자리가 불편해도 이 아이들에겐 내가 전부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서로의 잠자리를 나눠주고 있습니다. 얼마 전 방송에서 따로 잠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 좋다고 하는 내용을 봤습니다. 집을 마련해 줘도 따로 재워보려고 해도 결국에 같이 자고 있었습니다. 어느 게 맞는 정답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이들과 내가 행복하다면 그게 정답인 것 같습니다.
4. 글을 정리하며... 내가 보고 싶었구나.
하루는 너무 피곤해서 거실에서 잠든 적이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제 옆엔 강아지 한 마리, 고양이 두 마리가 함께 누워 있었습니다. 나머지 애들도 근처에 있었습니다. 익숙한 방이 아닌, 낯선 공간에서도 결국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런 걸 보면 알 수 있었습니다. 얘네들은 방이 아니라, 저를 중심으로 잠자리를 정하고 있다는 걸요. 사실 저도 그 아이들이 없는 밤은 허전했습니다. 몸이 익숙해진 걸 넘어서, 마음이 익숙해진 겁니다. 침대 위가 비어 있으면 괜히 몇 번을 더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오늘은 왜 안 오지?’라는 생각이 들면, 문을 살짝 열어두기도 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로 들어와서 털을 고르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발을 말고 누웠습니다. 그런 밤이 쌓였고, 지금은 저도 그 잠자리를 기다리게 됐습니다. 이젠 서로가 서로의 ‘잠자리 곁’을 만들어주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한 고양이가 제 머리맡에 올려둔 손 위에 조용히 눕더니, 그 위에서 새근새근 숨을 골랐습니다. 말 한마디 없이도 ‘보고 싶었다’는 마음을 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또 한 번 사랑을 배우고 서로의 온기를 나누고 있습니다.